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크의 엘리자베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에드워드 4세]]와 [[엘리자베스 우드빌]]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. 1475년 [[루이 11세]]의 아들 [[샤를 8세|샤를]]과 결혼을 약속하였으나 돌연 취소되었다. 1483년 아버지 [[에드워드 4세]]가 갑자기 사망하여 남동생 [[에드워드 5세]]가 즉위하였다.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삼촌 [[리처드 3세|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왕자]]가 섭정을 하였으나 곧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였고, 에드워드 5세는 [[런던탑]]에 감금당하였다.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막내 아들 리처드와 딸들을 데리고 [[웨스트민스터 사원]]으로 피신하였다. 하지만 [[리처드 3세]]는 리처드 왕자마저도 런던탑에 감금시켜 버렸다. 두 달 뒤인 1483년 6월, [[리처드 3세]]는 자신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[[에드워드 4세]]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을 무효화시켜 그들의 자녀를 모두 서자로 만들었다. 그 즈음 [[에드워드 5세]]와 리처드 왕자는 [[런던탑]]에서 사라졌고, 그들이 살해당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.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위 계승을 주장하던 [[헨리 7세|헨리 튜더]]의 어머니 [[마거릿 보퍼트]]와 동맹을 맺고 엘리자베스와 헨리의 결혼을 약속한다. 1485년 헨리와 [[리처드 3세]]는 보즈워스 전투에서 싸웠으며 리처드 3세가 전사함으로서 헨리는 [[헨리 7세]]로 즉위하게 된다. 당시 [[에드워드 4세]]의 모든 아들이 사망함에 따라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, 그녀는 왕위 계승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한다. [[헨리 7세]]는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서 정통성을 강화하였고,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모든 자녀를 적자로 인정하였다. 두 사람 사이에서 1486년 장남 [[아서 튜더|아서]]가 태어나고, 후에 일곱 명의 자녀를 더 낳았지만 살아남은 아이는 [[마거릿 튜더|마거릿]], [[헨리 8세|헨리]], [[메리 튜더|메리]] 뿐이었다. 1501년 장남 [[아서 튜더|아서]]가 [[페르난도 2세]]와 [[이사벨 1세]]의 딸 [[아라곤의 캐서린]]과 결혼하였으나 1502년 돌연 사망하였다. 1503년 엘리자베스는 딸 캐서린을 [[런던탑]]에서 출산하였다. 그러나 캐서린은 며칠 뒤에 사망하였고 엘리자베스 또한 [[산욕열]]로 37번째 생일에 사망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